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2009구매+구매예정 음반들,

1월. Travis, The man who.

2월. 두번째 달, second moon.

       지선, 인어...집으로 돌아오다.

3월. 남과 여... 그리고 이야기(various)

4월. 오지은 2집, 지은.

6월. 두번째 달, monologue project,alice in neverland.

7월. 검정치마, 301

8월. 크라잉 넛, 불편한 파티.

       브로콜리 너마저 1집.

11월.Mika, The boy who knew too much(deluxe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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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예정)

      루시드 폴, Les miserables.

      Green day, 21 century breakdown

 

학과.

난 단지 음악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정확히 말해서는 '구원받았다.'

아무도 날 믿지 않았을 때, 나도 아무도 믿지 않았을 때.

난 나를 숨기고 웃으며, 그 냉정함을 슬픔을.

구원받았다.

그게 펑크였다. 그때 듣던 게 sum41이였고 simple plan이였다.

그리고 greenday를 들었고 sex pistols를 들었다.

그러다 락에 심취했고 고스를 접했다.

인디음악 덕에 접한 고스는, 날 빨아들였고.

그것도 그 당시 내 삶의 한 부분이 됬다.

그리고 나는 음악이 없이는 살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당시 열 여섯, 그 해의 마지막날 밤을 난 홍대 롤링홀에서 보냈다.

공연이 끝났을 때는 새벽 두시 반이였다.

남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그래도 난 좋았다.

음악을 들을 수 없다면,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을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남들은 좋아하지 않는 현실.

현실적으로 그것은 전망이 전혀 없는 현실.

그러다 진로를 정했다.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음악을 평생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처음엔 음악평론가를 생각했지만, 우리나라엔 변변찮은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는 신문이나 방송 문화부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난 paper를 만났다.

사진 잡지일 거라 생각하고 우연히 펴본 paper.

그 후로 내 목표는 그것이 됬다.

실은 지금도, 그것이 목표이긴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좋다.

평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직업이라면, 그것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일단은 그 학과를 지원해 봐야겠다. 아직은, 기회가 많으니까.

 

 

 

 

뉴 문/짧은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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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후속작을 위한 영화. 남자는 보지 않는 게 좋을 듯 하다.

뻔한 로맨스를 믿지 않는 여자도.

그냥 소설까지였으면, 단지 인기있는 로맨스소설 정도로 끝났겠지만 영화는 좀 아니다.

그냥, 안 보는 게 나았을 뻔한 영화 중 하나.

 

 


그는 대체 뭐였던 걸까.

그는 내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게 두 번째였다.

난 그를 믿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 그는 그저 그런 변태 남자애로 각인되어 버렸으니까.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런것만도 아닌 것 같다.

그는 내게 같은 학교를 가자고 했다.

그와 나의 실력 차이는 꽤 되는데도.

자신이 낮출테니 같은 학교를 가자고 했었다.

그리고 그는 나 덕분에 내가 듣는 음악을 듣게 됬다.

나 때문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내가 계기를 준 건 사실이였다.

 

그러나 그는 가끔씩 너무 서툴렀다.

자신의 의도를 너무 나에게 노골적으로 얘기하려 했다.

난 사실 그런 얘길 길게 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여자와 그런 얘길 하는 것과 남자와 그런 얘길 하는 건, 확실히 다르다.

상대방도 그런 얘길 싫어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동성과,그러니까 여자와 그런 얘길 하는 건... 그냥 웃을 수 있는 하나의 떡밥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성과 그 얘길 하면... 위험하다.

뭐라고 더 표현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직감적으로 위험해! 라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되나.

 

그가 두번째로 날 좋아한다고 말한 날, 난 그가 부담스러워졌다.

그는 나라는 존재를 원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여자를 원하는 걸까.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원하는 걸까.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깊은 관계를 좋아하지만

그런 식의 관계는 싫었다.

마치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거야.'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관계.

그냥 친구이고 싶었다. 그대로가 좋았는데.

그는 그게 아니였나 보다.

 

솔직한 건 좋았지만, 그런 식의 솔직함은 상대에 대한 무례함일지도 모른다.

그걸 말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그냥 나와 하는 걸 바랬을 지도 모른다.

아니 난 확실히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단지 나와 하기를 바래서 저런 말을 하는 거라고.

그는 확실히 서툴렀고, 난 그가 생각하는 것 만큼 순수하지 않았다.

 

왠지, 조금은 아쉽다.

세상을 냉정하게 보는 눈을 가진 아이였는데.

그래서 대화하면 뭔가 말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좋은 느낌인지 나쁜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와의 대화는 좋았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그냥, 밤, 생각난다.

 

2009년 9월 26일 토요일

디데이...

수능까지 디데이 사십칠.

어느새 난 (법적으로)열여덟이 되어 버렸고.

꿈꿔왔던 학교에 수시를 썼고(2차이긴 하지만)

9월 모의는 생각보다 망쳤지만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스트래스, 라고 하는 건 있는데로 없는데로 다 받는 것 같은데,

이것도 참지 못하는데 어떻게 살래?

라고 생각하며 진정하려고 하지만

그냥, 떠나고 싶을 때가 너무도 많아.

물론, 겉으로 보기에 난 그냥 나름대로 성실히 하는 그런 애

라고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실은 나는 그렇게 멀쩡한 사람은 아닌걸.

단지 최소한의 개념이 있고 싶은 사람인 것일 뿐,

아 이제 소녀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게 되겠구나.

그런데, 내게 소녀라는 말이 어울리는 날이 있긴 있었으려나?;

 

꿈은 꿈일 뿐인 것이지만, 하지만 꿈은 이루라고 있는 것이고.

현실은 너무도 각박하고,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현실이 아니겠지.

아니, 충분히 아니고도 남겠지.

내년이 되어도 우리에게 변한 것이라고는 어리광을 부릴 수 없다는 것 밖에는 없을 지도 몰라.

 

살아가는 게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괴로운 거겠지.

어디서라도, 행복을 느껴야 그게 살아가는 거겠지.

 

지금, 수능을 준비하는 아이들 중 백분위가 99%가 나오는 아이들은 행복할까?

사실,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3-4월 즈음에는.

그렇지만 그 아이가 그랬지. 더 심하다고. 그럴 수 밖에 없겠지.

 

불편한 진실, 그렇지만 너무도 적나라한 진실이기에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실은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인생은 생각보다 긴 것이라고, 그리고 생각보다 짧을 거라고.

 

;

아 이러고 보니 내가 너무 애늙은이 같잖아!;

2009년 4월 24일 금요일

스킨!!

바뀐 스킨 편집 시스템; 전체적으론 꽤나 맘에 들지만...

이거 네이버 블로그도 이렇잖아...ㅋㅋ

이거 처음엔 꾸미는게 되게 신기해서 막 해보다가

나중되면 결국엔 이것도 저것도 다 귀찮아지는 그것...

 

 

두번째 달/Second Moon

두번째 달의 첫번째 음반. 실은 약간은 충동적으로 구매한 음반이였다.

두번째 달의 '얼음 연못'은 정말 좋아했지만, 그 곡도 내가 쉽게 듣는 음악의 종류는 아니였고.

다른 곡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상태였기에.

어떻게 보면 새로운 장르에 대한 호기심이였고 또 어떻게 보면 그냥 '지르고 싶은 욕구'였다.

 

처음 내가 이 음반을 cd player에 넣고 첫 음을 들었을 때, 느낀 건 '아프리카 음악!' 이라는 느낌이였다.

무언가, 아프리카 원주민의 타악으로 시작되는 듯한 인트로, 그러나 그건 여행의 시작이였다.

두번째 달이 안내하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계로의 여행.

 

항상 시작은 새롭고 기쁘지만, 흥미롭지만,그것을 표현해내는 두번째 달만의 감성은 조금 더 흥미롭다.

가는 길이 항상 기쁘지만은 않듯이. 그들의 음악도 그것을 표현한다.

슬프지만 슬픔을 이겨내고 맞는 새로운 것.

 

새파랗게 빛나는 태양과 보라색 노을.

분홍빛으로 빛나는 바닷빛과 회색의 연못.

 

그것이 이들의, 내겐 한없이 새로운 감성이였다.